2013. 3. 24. 22:58

어떤 논리

나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내게 상처받지 않고, 내가 너무 사랑한 나머지 내가 상처받지 않을 사람을 찾으려 들다니. 이렇게 멍청할 데가.

 

 

오래 전의 그는 돈의 논리에 의해 움직였다. 자기한테 밥 사주는 사람이 좋은 사람.

일전의 그는 사랑의 논리에 묶여 있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

나이로비는, 현실의 논리로 산다. 현실적으로, 현실에 맞게, 현실에 맞추면서. 현실적인 사람이 좋은 사람.

 

 

나? 난 그냥 내가 아까 말한 것 같은 사람을 찾으려 들고 있지.

상처주지도 상처받지도 않을 수 있는 사람.

 

 

 

2012. 12. 28. 14:04

바게뜨를 머랭으로.

나이로비를 만난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의 일이다.  감정의 기복이 거의 없고 말수도 적은 데다가 소리 내어 웃는 일조차 없는 그를 향해 나는 불평했었다.

 

사람이 왜 그래요? 메말랐어. 바게뜨같잖아. 그것두 사막에 한달쯤 굴러다니던 바게뜨.

 

그래요, 난 좀 매정한 사람이긴 하죠.

 

어제 우리는 각자의 야근을 마치고 함께 퇴근했다. 한참의 대화가 오간 끝에 운전대를 잡은 그의 옆모습에 대고 나는 이야기했다.

 

요즘엔, 사막에 보름쯤 굴러다니던 바게뜨 같네. 한달은 아니고.

 

나 많이 달라졌잖아. 그리고 예전에도 메말랐다는 말엔 동의할 수 없었어.

 

그거야 내가 요즘 오빠한테 초코 시럽 같은 걸 막 끼얹으니까 그런거고!

 

네가 끼얹는거야? 나 스스로 끼얹는 거 아냐? 그런거야. 내가 하는 거라고.

 

그래 뭐, 노력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은 해.

 

노력하는 거 아니야. 그냥 이렇게 되는 거지. 저절로 변해가고 있는 거야.

 

.... 그 편이 훨씬 좋다. :)

 

그가 부드럽고 촉촉하게 변해가고 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궁금해하고, 여전히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는 않지만 좋고 싫음을 표현하는 데에 전처럼 인색하지 않다. 아직도 듣기 좋은 입에 발린 말은 하지 않으나 대신 자신이 구사하는 담백한 언어에 진심을 담기 시작했다.

 

집 근처에 차를 세워주고, 안전벨트를 풀며 헤어짐의 인사를 하려는 순간 나이로비가 물어왔다.

 

뽀뽀도 안 해주고 가?

 

.... 나이로비가, 부드럽고 따뜻하게 변해가고 있다. :)

2012. 5. 29. 08:48

사찰-성당 답사기 2. 익산 미륵사지

*이 답사기에는 사진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쥔장이 재앙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라서지요 -_- 




원래대로라면 여수로 갔어야 했다. 내 여행 계획대로라면 분명히 그랬다. 엑스포가 열리고 있고, 장범준(버스커 버스커)의 구성진 목소리가 만들어내는 "여수 밤바다"를 반드시 현장(!)에서 듣고 말겠다는 꿈에 부풀어 서울을 출발할 때 까지만 하더라도. 

하지만 나는 몰랐다. 사흘 연휴 +  여수 엑스포의 여파가 그렇게도 심각할 줄. 

여수로 직행하는 차편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가 살고 있는 익산을 경유지로 택한 것 까지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했)었다. 그게 네 시간 반이 걸릴 거라고는 나도, 나를 기다리던 내 친구도 예상 못했었다. 5시에 출발한 고속 버스는 10시가 다 되어서야 나를 익산에 던져 놓았다. 고속버스 터미널 차창 밖에서 목을 빼고 나를 기다리는 친구를 발견하는 순간 깨달았다. 여수엔 다 갔구만. 


친구의 동거인(!)을 쫓아버리고, 새벽 네 시 넘어서까지 수다를 떨었다. 명확히 말하자면 나는 친구의 침대를 차지하고 누워서, 친구는 제 침대에 기대서 뒹굴댔다. 특별히 중요한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고, 별스럽게 진지한 대화가 오가지도 않았다. 단지 우리는, 낄낄대다 말다를 반복하며 오래간만의 해후를 즐겼을 뿐이다. 


"손님이 안 자는데 나 혼자 잘 수는 없다"고 쏟아지는 수면 앞에 굳건한 방어태세를 보이던 친구는 나를 이불 속에 구겨 넣고는 방에 불을 꺼주고, 내가 잠들 때까지 내 옆에 앉아 있었다... -_- (친구님 따끈한 우유에 자장가도 추가해 주세염) 아침에 깨어나보니 옆방에서 고이 잠들어 있더라. .... 그렇지. 나는 손님 주제에 안방은 물론이고 주인 침대까지 차지한 불한당이었던 거다. 


배고픔으로 사나워진 내게 아침을 먹여놓고, 친구가 물었다.


"음, 지금 미륵사지 석탑은 보수 중인데, 가볼래?"

"콜!"


....


분명히 어린 시절 아버지 손에 이끌려 미륵사지에 와봤었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 있는데, 복원이 완료된 동탑 앞에서 아무 것도 떠오르질 않았다. 동탑은 분명히 기계로 깎아 복원했으려니 중얼대며 아무 기대 없이 복원중인 서탑 덧집에 들어섰다. .... 


좋은 그림은 그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말을 건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이 비단 그림에 국한되어 있지 않음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덩그러니 비어 있는 탑터(미륵사지 서탑은 복원을 위해 전면 해체가 이루어져 있는 상태다.), 5층 건물 높이의 덧집 안에 차곡차곡 들어찬 천 오백년 전에 깎은 돌들, 흙에서 올라오는 후끈한 기운, 고집스럽고 단단하게 다져진 흙바닥....

지독히 넓은 절터에서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었는데, 막상 나를 압도한 것은 그 넓은 절터도, 4미터짜리 당간지주도 아닌 미륵사지 서탑의 탑터였다. 상상 못했던 크기, 넓이, 세월을 지배하는 우아함.

"세상에.....! ..... 세상에! 미륵사가 이렇게 큰 절이었어....?!" 

기단부에서부터 천천히, 나는, 눈으로 허공을 훑어나가기 시작했다. 멍하니 고개를 들고 빈 데를 바라보는 내게 친구가 물었다. 

"복원된 탑이 보여?"

"응!"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다니 역시 너는 내 친구다,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네 친구여. 


흙이, 돌들이, 비어 있는 탑자리가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이 돌들이 쌓이고 쌓여서 동쪽에 서 있는 저 탑보다 훨씬 더 우아하고 장대한 탑이 될 거라고, 똑같이 생겼지만 절대로 똑같지 않은 탑이 되려고 하고 있다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다시 온몸에 소름이 쭉 돋는다. 7세기, 대체 백제의 석공들은 무슨 수로 그 돌을을 쪼고 다듬어서 그토록 아름답고 우아하면서도 거대한 탑을 만들어냈을까. 


온갖 감탄사를 연발하는 내게 친구가 말했다. 이렇게 좋아할 줄 몰랐다고. 여기 네번째 와보는데, 이렇게 감동하는 사람은 처음이라고. 내가 감동하는 모습에 자기가 감동했다고. ... 아, 그러니까, 미륵사지의 탑터에는... 그럴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돌아오는 길, 나는 여전히 내가 무언가에 깊고 길게 감동할 수 있는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점에 감사했다. 


서울로 돌아와 자료를 검색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동탑은 역시 기계의 힘을 빌어 태어난 아이였다. 그리고 서탑은 원래 탑을 이루고 있던 돌들을 최대한 이용하고, 돌이 남아 있지 않은 부분만 새로 만들 예정이라고. 그렇게 내게는 익산에 다시 내려가야 할 이유가 생겼다. 


생일 선물 챙겨주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기사 노릇 해주고, 심지어 돌아오는 차편까지 해결해준 친구 H에게 감사를 전한다. 뭣보다 미륵사지에 가보겠느냐고 물어준 데에 두 배로 감사.... 덕분에 많이 가벼워졌었어. 네 덕분에. :) 



2011. 12. 29. 09:05

백 권의 책, 300일의 이야기

2011년 12월 29일 오전 6시 20분. 신도림을 향해 꾸역꾸역 달리는 용산 급행 전철 안에서 "내가 정한 기준에서 공식 집계 가능한" 올해의 백 권째 책을 완독했다. 내가 읽은 백 번째 책은, 돌베개의 답사여행의 길잡이 시리즈 1권, 전북 편이었다. 


전북(답사여행의길잡이1)
카테고리 역사/문화 > 역사기행
지은이 한국문화유산답사회 편 (돌베개,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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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서출판 돌베개를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2006년, 대학 3학년의  어느 전공 수업 자료를 구하기 위해 도서관을 이잡듯이 뒤지다가 찾아낸 <고전 소설 속 역사 여행>이 나와 돌베개의 첫 만남이었고 그 날 이후 연달아 <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와 <나의 아버지 박지원>을 만나면서 이 출판사의 책이라면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었다. 하지만, 올해의 백번째 책이 돌베개의 책이 된 것은 단순히 그런 이유에서만은 아니었다. 


고전소설속역사여행
카테고리 역사/문화 > 청소년 역사
지은이 신병주 (돌베개,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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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작은단지를보내니
카테고리 인문 > 한국문학론
지은이 박지원 (돌베개,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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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아버지박지원
카테고리 인문 > 한국문학론
지은이 박종채 (돌베개, 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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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89번째 책을 다 읽어갈 무렵, 내가 가장 마음을 두고 사랑했던 내 사촌오빠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긴 투병 생활 동안 나는 그를 찾아갈 때마다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는 대신 그 옆에 배를 깔고 누워서, 때로는 쪼그리고 앉아서 책을 읽었다. 그리고 그가 떠난 후 96번째 책을 읽으며 올해 마지막 책을 생각하던 즈음 그의 빈 방엘 들어서게 됐었고, 주인 잃은 서가에서 돌베개의 답사여행 길잡이 시리즈 가운데 몇 권을 발견했다. 

뉴칼레도니아천국에서의하루
카테고리 여행/기행 > 기행(나라별)
지은이 최재호 (무한,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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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9번
다산의마음정약용산문선집
카테고리 시/에세이 > 장르시
지은이 정약용 (돌베개,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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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번

오빠는 여행을 지독히 좋아했다.  봄가을이면 이모들 네 사람을 모두 끌고 돌아다니며 자기 표현으로 양로원 원장 노릇을 했고, 제자들, 후배들, 친구들을 여기저기로 데리고 다니면서 추억을 쌓던 사람이었다. 나는 사촌 동생들 가운데 오빠의 그 여행 덕을 가장 크게 본 녀석이었다. 
그런 오빠였다. 그가 이 책들을 사서 서가에 꽂아두고, 각 지방에서의 여행 경로를 계산하며 즐거워했을 모습이 머리를 가득 채우는 순간 2011년의 내 마지막 책은 당연히 이게 되어야 했다. 책들을 꺼내 끌어 안고, 거실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계신 이모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입을 틀어 막고 한참을 끅끅대고 울었다. 

그렇게, 박완서로 시작된 올해의 독서는 한국문화유산답사회가 엮은 답사 길잡이로 마무리되었다. 가능할지 어떨지, 목표를 세울 때만 해도 나조차 알 수 없었던 100권의 책이었다. 심지어, 올해는 백권쯤 읽어야겠다는 희미한 목표를 세운 것은 연초도 아니고 2월 중순 무렵에서였다. 2월 초순의 두바이-아부다비 여행에서 돌아오면서 그 결심을 굳혔던 기억이 난다.  그런 결심이 선 것은, 그리고 그 결심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한 것은 고백하자면, 외로움 때문이었다. 

P군을 두고 돌아서던, 그리고 P군이 나를 떠나보내며 돌아서던 아부다비 국제 공항 터미널에서도 나는 책을 읽고 있었다.

휘청거리는오후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박완서 (세계사, 19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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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부다비에 가져갔던 박완서 선생의 책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뼈에 스미는 외로움으로 치를 떨었다. 이제 다시 이별이다. 다시 혼자 남겨진다. 곧 다시 보게 되겠지만 한동안은 혼자서 이 생활을 해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돌파구를 찾게 만들었다. 그래서 읽기 시작했던 거다. 책을. 끝없이. 

한 해에 200권의 책을 읽어치웠던 때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 때의 독서는 외로워서라기보다는 오기에서였다. 학부 시절, 제대로 된 과제를 제출하기 위해서, 토론에서 명확한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서, 나는 도서관을 전부 사기라도 할 기세로 책을 읽어댔었다. 그 때의 독서는 분명히 오기와 승부욕에서 비롯된 전쟁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P군은, 미친 듯이 책을 읽어대는 나에게 책을 선물하면서도 걱정스러워했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모친께서 제발 책 좀 그만 읽고(그만 사들이고) 다른 데에 눈을 돌려보라고 조언하시고, 지인들에게 대단하다는(지독하다는) 말을 듣고, 심지어 새로 산 책을 끌어안고 히죽이다가 괴기스럽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책읽기를 멈출 수 없었던 것은 독서야말로 올해 내게 최고의 친구이자 최선의 탈출구였기 때문이다.
함께 있고 싶은 사람 곁에 있을 수 없는 공허, 외로움, 그런 것들을 나는 책으로 채웠고 그 선택은 백권의 책을 모두 읽은 지금 돌이켜 생각해도 최고이자, 최선이었다. 

Twilight
카테고리 아동/청소년>소설
지은이 Meyer, Stephenie (LittleBrown,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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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모든것의역사
카테고리 과학 > 과학이론
지은이 빌 브라이슨 (까치,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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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브라이슨의재밌는세상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지은이 브라이슨 (추수밭,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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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브라이슨발칙한유럽산책
카테고리 여행/기행 > 기행(나라별)
지은이 빌 브라이슨 (21세기북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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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고정치김어준의명랑시민정치교본
카테고리 정치/사회 > 정치/외교
지은이 김어준 (푸른숲,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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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라
카테고리 정치/사회 > 사회학
지은이 스테판 에셀 (돌베개,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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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쾌락의역사역사상가장강렬했던쾌락의기록
카테고리 역사/문화 > 서양사
지은이 레이 로렌스 (미래의창,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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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잡스
카테고리 시/에세이 > 인물/자전적에세이
지은이 월터 아이작슨 (민음사,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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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이야기세트(전15권)
카테고리 역사/문화 > 세계사
지은이 시오노 나나미 (한길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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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P군 컬렉션


모르긴 몰라도, 아마 내년에도 책을 읽어대고 있을 것이다. 건강관리뿐 아니라, 책 이외의 다른 데에도 취미를 붙여보겠다며 시작한 운동 중에도 트레드밀 위에서 책을 읽다가 떨어지던 나니까. 다만 내년에는 조금 여유를 갖고 독서할 수 있겠지. 



사족 1: 공식 집계 가능한 내가 정한 기준이란, 올해 처음 읽은 책들을 말한다.
           이미 읽었던 책을 다시 읽은 경우 100권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처음 읽었다고 해도 만화책, 월간지는 제외. 
사족 2: P군 컬렉션 가운데 일부는 아직 완독하지 못했음. 
사족 3: 중반 이후부터는 사진을 찍어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에 동시에 남김.
           사진 가운데 내 이니셜인 H 책갈피가 얹혀 있는 것은.. 단순히 책갈피로 그걸 쓴 책의 경우임;
           이전 기록은 수기로 노트에 작성. 나는 아날로직한 인간.
사족 4: 올해 내 최고의 책은 역시 돌베개의 <분노하라>, 최악의 책은..... 노코멘트.
사족 5: 솔직히 말해서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100권이 많아서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사실 많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목표를 달성했다는 점에서.


올 한 해 나의 독서에 (의도하시지 않으셨겠지만) 지대한 도움을 주신 도서출판 돌베개 마케팅 담당 조원형 님, 패밀리 세일로 막판 책 지름에 불을 붙여준 민음사, 좋은 책을 50% 이상 할인된 가격으로 (현재도!) 판매 중인 역곡역사 내 서점, 항상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책 사진에 좋아요-_-* 눌러주시는 서배우님, @amourpropre님, 뚜군, 곤, 그리고 누구보다도 이 독서량에 영향을 미치고 또 그만큼 책을 공급해준 P군에게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2011. 12. 15. 08:29

빌어먹을 감성 폭풍

요즘 읽고 있는 책은 네 권. 돌베개의 <한국 문화재 수난사>, 민음사의 <스티브 잡스 전기>, 역시 민음사의 <몬테크리스토 백작4>, 그리고 일본 만화인 <마스터 키튼>. 써두고 나서 보니 어쩐지 묘하게 관련 있는 책들을 읽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 나만 그런가;

하여튼 문제는 이렇게 멀티 리딩을 하고 있다는 점이 아니고 내 감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 시즌이라 걸핏하면 펑펑 운다는 데 있다. 고철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국보급 동종 들고 와서는 "고철로 팔기엔 아까운 물건인 것 같은데 귀한 거라면 나라에 바치겠다."고 말하는 고철 판매상 이야기에 지하철에서 눈시울이 뜨거워지질 않나, 잡스가 회사에서 거만한 왕따였다는 말을 읽으며 가슴이 짠해지질 않나(내가 지금 잡스 불쌍하다고 할 처지냔 말이다), 어제는 운동하러 가서 스테퍼 밟고 있다가 발랑틴이 프란츠하고의 결혼을 아주 극적으로 모면-_-하는 장면에서 혼자 빵 터져갖고 쳐울었....


미쳤나봐. 심장이.  
2011. 12. 14. 17:35

아마도.

울게 만들고, 아프게 하고, 결국 떠나가게 만들겠지.
2011. 12. 14. 09:39

s 중독자의 고백

예기치 않은 시사회 당첨, 급작스러운 종로행. 2011년 12월 13일 오후 8시, 영화가 시작되고 5분만에 후회했다. 이 영화를 이 멤버구성으로 보러 오는 게 아니었는데.

제목의 s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이미 시작 전에 알고 있었고, 19세 미만 관람불가라는 등급에서도 예상을 아주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영화의 노출 수위는 내 기대치를 훌쩍 넘겼다. 그냥 야하다, 노출이 심하다를 넘어서서 심지어 페니스를 또렷이 볼 수 있다. ... 문제는, 그런 장면들이 별로 섹시하다거나 흥분된다는 느낌을 주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사랑 없는 섹스에 중독된 여주인공이라는 영화 줄거리상 의도된 연출일텐데, 감독의 촬영 기법에 찬사를 보낸다.

영화는 시종일관 놀라운 스피드로 관객를 몰아붙이며 압도한다. 여주인공의 감정 변화와 사건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소품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사과와 속옷을 눈여겨보시라.) 

단순히 제목에 이끌려 나는 야한 영화가 보고 싶다, 쭉빵한 여인네의 벗은 몸을 봐야겠다는 심리로 극장을 찾아간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여주인공이 늘씬하기는 한데 가슴이 빈약하더라고.  

섹스에 중독된 여자가 자기 자신을 찾아나가는 이야기. 영화 후반부에 내가 코끝이 시렸다는 건 비밀.  
2011. 12. 13. 09:28

고쳐질 수만 있다면 사실 난 가장 아름다울테니

토요일,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불시에 찾아온 재무이사와 이런 저런 업무상의 대화를 나누다가 침묵이 찾아들었다. 잠시 후 사촌 오빠의 이야기가 나오고, 나는 사촌 오빠와 동갑이라는 재무이사의 머리에 내린 서리를 보며 오빠가 얼마나 젊어 보이는 사람이었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화제가 사적 공간으로 넘어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그가 내게 물었다.
"하나씨가 몇 살이지?"
"내년에 서른 둘이 됩니다."
"벌써 서른이 넘었구나."
"이사님과 첫 면접때 서른이었는걸요."
빙긋, 그가 조용히 웃었다. 나는 처음부터 내가 그런 그의 조용함과 신사다움을 사랑했다는 점도 다시 깨달았다. 그리고 그가 내게 또 물었다.
"결혼을 해야지?"

 문득, 나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시선을 똑바로 맞추고 싱긋이 웃어보이고는 대답했다.
"아직은요."
"그래... 아직은."
끝내, 하지 않아도 좋을 말을 굳이 덧붙였다.
"제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육감이 유달리 발달한 사람이 있다. 눈치가 빠르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시쳇말로는 촉이 좋다고 표현하던가. 꼭 그렇지 않더라도 상대의 마음을 읽고 그 분위기를 알아내는 데에 능한 사람이 있다. 바로 내가 그런 부류다. 이 사람을 오래 보게 되겠구나, 라고 생각한 이상 그 예감이 틀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필요 이상으로 발달한 이런 재능은 가끔 나를 괴롭게 한다. 이렇게까지 알고 싶지 않다고. 

그리고 나는 예감한다. 상처주게 되겠지. 아프게 하겠지. 센척, 강한척 허세를 부리다가 어느 순간 와르르 무너져 눈물을 터뜨리고 속내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내 자신에게 진절머리를 내고 자학하는 때가 올 것이고. 나는 안다. 내가 얼마나 엉망인지를. 


 
2011. 11. 30. 15:31

서열 1위, 내게는 영원한.

이모가 넷에 외삼촌이 둘이다. 우리 모친까지 7남매가 각각 결혼해서 낳은 자식의 (원래) 숫자를 대충 헤아려보면 열 다섯 명이 넘으니 가족 아닌 타인에게 그들의 이름까지를 일일이 기억하라고 하는 건 폭력에 다름아닐게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인가 누군가에게 이종 사촌들의 이야기를 할 때면 농반 진반으로 서열 몇위, 라는 설명을 해주곤 했다. 

큰 이모의 큰 아들인 오빠는 막내 외삼촌과는 여덟 살 차이밖에 나지 않지만 나하고는 무려 열일곱 살이나 차이가 나는 서열 1위였다. 공부와 사진과 비오는 날과 운동을 좋아했고, 그런 만큼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짓궂고 괴팍한 구석이 있어서 마귀라는 별명을 달고 살았다. 멀리 살고 있어 왕래가 적었던 서열 4, 7, 8위의 사촌언니들과는 조금 서먹했던 대신에 5,6 위 오빠들 밑으로 태어난 "드디어 여자"였으며 "여자로는 막내"던 나를 예뻐하면서도 그걸 괴롭히는 걸로 표현하곤 했던 사람이다. 
레프팅 하러 가자고 데려가서는 강물에 머리부터 빠지도록 집어 던지고, 이모네서 가족 모임을 갖고 돌아올라치면 신발 속에 포도가 들어 있고, 호박 꿀탱이 오리 못난이라고 부르며 간지럼을 태우고, 새치 100개를 다 뽑을 때까지 놔주질 않고. ... 심지어 서른이 넘어서까지 나는 오빠에게 열두서너 살 무렵의 꼬맹이로만 각인되어 있었다. 

위암 4기 진단과 6개월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을 때 그는 막 우리 나이로 마흔 일곱이 되어 있었다. 2010년 1월, 진단과 수술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졌고 그 이후 지속되던 항암치료를 받는 내내 그는 불평도 분노도 하지 않은 채 그냥 버티고, 또 버텼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이모들을 모시고 여행을 하고 돌아다니고, 병중에도 늘 하던 정기 전시회를 거르지 않았다. 나는 그러니까... 올해 11월 초에 그가 마지막 입원을 하기 직전까지도 그의 쾌유를 의심하지 못했었다. 

2011년 10월 13일, 다들 이번이 마지막일 거라고 말하는 그의 생일날 그를 찾아갔다. 자기 방에 가만히 누워서, 항암치료를 하지 않아 자라나기 시작한 밤송이 같은 머리를 하고서 그는 내게 싱긋 웃어보였다. 서랍을 뒤져 봉투를 하나 쥐어주며 한사코 거절하는 내게 오빠는 그랬었다. 얼른 받으라고. 기운 없다고. 사람이 곧 죽을 때가 되면 이렇게 안하던 짓도 하고 그러는 거라고.

채 2주가 지나지 않아 오빠가 마지막이 될 입원을 했고, 2011년 11월 13일, 병석에 누운 그를 찾아가서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이 사람이 회생하기가 쉽지 않겠다. 그리고 11월 23일. 몰핀 투약량이 늘면서 정신이 들었다 나갔다를 반복하는 그를 찾았던 날 그가 늘 하던 것처럼 고르고 건강한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가까이 다가간 나를 꼭 끌어안고서, 오빠는, 말했다.
"미안해."
그 말을 듣는 순간에, 그를 잡고 있었던 내 마지막 끈을 놓았다. 순순히, 그가 이제는 우리 곁에 머물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울컥 솟은 눈물을 애써 감추고서 그의 손을 꼭 잡아주고 돌아서던 길이 마지막이었고, 그가 살아서 내게 한 마지막 말은 결국 미안해, 가 되었다. 그는 결국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48세의 생일을 보낸 후 한 달 반 만에 세상을 버렸다.

오빠를 보냈다. 원래대로라면 이제는 그의 친동생이 서열 1위라는, 내가 붙인 하잘것 없는 호칭을 물려받아야 맞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지금도 앞으로도 내게 서열 1위는 그인 것을. 참 별볼일 없고 의미도 없는 호칭일지언정 그 이름을 주고 싶은 사람은 그뿐인 것을. 

아직 훈련병 신분이라 화장이 끝나는 것도 다 보지 못하고 귀대해야 했던 그의 아들이 부대로 출발하기 직전 나를  안고서는 속삭이는 것처럼 남긴 한 마디가 아직도 귓전에 울린다.
"고모, 부탁해요..." 

1964년 10월 13일 - 2011년 11월 27일  
부디 평안히 영면하기를. 아프지도 슬프지도 않은 곳에서 이제는 웃고 있기를.
내 사랑하는 서열 1위 오라버니.  
2011. 10. 22. 10:41

저는 한나라당 지지자의 딸입니다.

저희 아버지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 공수부대에서 군 복무를 하셨습니다. 김신조라는 남파 간첩의 수색 작전에도 투입되셨었고, 지금까지도 당신의 군 생활을 무척 자랑스러워 하고 계십니다. 이런 저희 아버지는, 땅을 좀, 갖고 계세요.
제 아버지께서 소유하고 계신 땅은 덩치는 크지만 토지 용도가 임야인 것은 물론이고, 그린벨트로 묶여 재산권의 100% 행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이 땅은 그린벨트라는 제도가 생기기도 훨씬 전부터 집안 대대로 물려져 내려왔고, 따라서 아버지는 부동산 투기를 위해 이 땅을 매입하신 것이 아니라 단순히 상속자이기 때문에 이 땅을 물려받으신 것 뿐입니다. 제 값에는 팔지도 못할 땅을 끌어안고 매년 꼬박꼬박 없는 살림에 재산세를 납부하느라 애를 먹고 계시지요.

음...
저는 정치를 잘 모릅니다. 이게 결코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나름대로, 현재 여당과 야당이 추구하는 진로는 간략하게나마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감히 이들의 당론과(당론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말입니다.) 정책(이 역시 이들이 갖고 있다고 가정했을 때의 이야기지요.)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정도의 경지에 이르러 있지는 않습니다. 
제가 말할 수 있는 건 고작해야, 한나라당의 이른바 "가진 자들을 위한 정치" 덕분에, 저희 아버지께서 이래저래 덕을 좀 보고 계시다는 겁니다.  가장 좋은 예로는 종부세 일부 위헌 판결을 들 수 있겠네요. 판결은 헌재가 했지만 여기엔 분명히 정치적 입김이 작용했(다고 봐야 맞는 거겠지요?)으니까요.

 
일반적인 기준에서, 아버지를 결코 재벌이라거나 돈 좀 있는 사람의 범주에 넣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너희 아버진 땅이라도 있지! 라고 말씀하신다면 할 말이 없어지는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 땅은 아버지께 짐이면 짐이지 별다른 혜택을 주는 재산은 아니에요. 팔 수는 없고 재산세만 꼬박꼬박 꿀꺽대며 먹어치우는 임야라니 이건 어찌 보면 저희 아버지 같은 소시민에게는 재앙입니다.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연세도 많고(곧 칠순을 맞이하시니까요), 군생활은 대단한 독재자 밑에서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하셨고(제 기억이 맞다면 아버지 군 시절 사단장이 전두환 씨였을 겁니다.), 시쳇말로 "얻어 걸리는" 거지만 어쨌든 현 여당의 정책 덕분에 이런 저런 소소한 혜택도 좀 받으시고...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지 않을까요.
아버지의 현실은 이런 식으로 야당 지지자들이 이야기하는 정의와 상충합니다. 물론 아버지 당신 자신께는 야당과 야당 지지자들의 정의가 정의가 아닐 수밖에 없구요. 게다가 본의 아니게 언론 통제를 겪으시는 상황에 놓여 있으시니, 젊은이들의 시선으로 볼 때 이 양반은 수구 꼴통이 되는 겁니다. 저는, 이런 저희 아버지를 비난해야 하는 걸까요?

아버지의 현실이야 좀 특수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굳이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저희 아버지와 비슷하게, 자신의 의도나 인생의 가치관과 상관 없이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여당의 정책에 고개를 끄덕이는 분들이 많으실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분들까지를 싸잡아 수구 꼴통이라고 욕하기 전에 보다 폭넓은 방법으로 정보를 전달할 길을 찾아야 할 것 같은데, 이번 시장 선거의 진행 방향을 보고 있으면 그냥, 전 좀 답답하네요. A가 나쁜 인간이니까 B를 뽑아야 해, 라는 기조로는 아버지 같은 분을 설득할 수 없을 테니까요.... 

다소 횡설수설한 감이 있습니다만, 저는 박원순 후보가 조금 더 정책적으로 자세하고, 상냥한(!) 방법으로 유권자들을 설득하시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아버지께 "나경원 후보가 이랬대요, 저랬대요, 그러니 시장이 되기엔 적합하지 않아요."라고 말씀드리기보다는 "박원순 후보는 이런 저런 정책을 갖고 있어요, 아버지께 도움이 될 거예요."라고 말씀드리는 편이 훨씬 더 효율적일테니까 말이에요. 저같은 정치맹도 조금 더 설득력을 가질 수 있게.




덧: 아버지는 서울 시민, 저와 어머니는 경기 도민.  아, 아까워라 ;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