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2. 7. 10:53

악마, 여행을 떠나다.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어딘가에 오아시스를 숨기고 있기 때문이지. - 사랑해요 생 떽쥐베리.

그래서 결심했었더랬다. 오아시스를 찾아야겠다고. 그래서 내 사막이 아름답다는 걸 증명해보이겠다고. (여행을 결심하고 티케팅에 이르기까지 채 48시간이 걸리지 않았던 것은 이 여행의 열쇠를 나눠쥐고 있었던 사람들-아니 뭐 코카콜라 간부단도 아니겠고 여행 한 번 가는데 뭐 그리 얽힌 사람이 많....- 전부의 결단이 그만큼 빨랐다는 증거다. )

<- 인천 인터내셔널 에어포.... 그래, 인천 국제공항 121번 게이트 앞에서. 뒤쪽으로 보이는 날개가 에티하드 항공 EY 873 편 항공기의 일부 되시겠다.

이 여행은, 이륙부터가 쉽질 않았다. 원래 이륙 시각은 분명히 00시 40분이었는데 화물칸에 이상이 생기면서 2시간 후인 새벽 2시 40분까지도 활주로에서 떠나지를 못하는 비행기에 갇혀서 생각했다. 이러다 이륙 못하면 다 죽여버리겠  화를 내 주겠다고. 죽기는 싫었는지 결국 어찌어찌 이륙은 했는데, 그 다음이 아주 즐거웠다. 왜 한국에서 떠나는 비행기에 한국 승무원이 한 명뿐인지 설명을 해봐 이것들아. 버럭! 그리고 그건 먹으라는 기내식이냐 아니면... (에티하드 항공의 기내식은 맛없기로 악명 높다고 한다-_-)


2시간의 감-_-금과 10시간의 비행 끝에 마침내 현지시각 오전 8시 30분 아부다비 국제공항에 이르러 랜딩기어가 내려지는 순간 내가 발견한 건 무려 공항 터미널 에어컨 실외기에 당당하게 붙어 있던 LG 로고 였지만 사진은 생략한다. 이쯤에서 말해두건대, 아부다비와 두바이를 빨빨대고 돌아다니면서 카메라라는 물건을 손에 쥐어보지를 않았다. 세상에 사람의 눈보다 더 정교한 카메라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UAE는 기본적으로 이슬람 국가라서 신체접촉에 대한 법규가 엄격한 편이라고 한다. 실제로 내가 출국하기 얼마 전 아부다비 교민 신문에는 공공장소에서 키스하다가 구류 및 벌금 처분을 받은 영국인지 프랑스 부부의 이야기가 실렸었다. ... 뭐 그렇다고.



우측 사진이 그 유명한 아부다비 그랜드 모스크.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큰 이슬람 사원이고 축조에 들어간 돈은 거의 세계최강이라던데 건물 외벽과 내벽이 전부 옥이다. 기둥에 새겨져 있는 저 식물모양 모자이크는 무려 자개. 


입장하기 직전 동행한 두 명의 남성에게는 더없이 관대하던 모스크 직원은 내 앞을 가로막고 서서 사원 입구 구석의 공간을 가리키며 가서 옷을 입고 오라고 요구했는데, 아 물론 그랬다고 내가 벗고 있었다는 건 아니다-_- (그랬을리 없잖아!)

어디까지나 기도를 목적으로 하는 사원 건물이기 때문에 입장할 때 여성은 히잡과 차도르를 입어야 하며 신발을 벗어야 들어갈 수 있다. 출발하기 전부터 아부다비에 가면 반드시 입어보리라 생각했지만 막상 사원에서 준비해두고 있는 이슬람 지역 전통 의상을 받아들고 나니 막막해졌다. 외국인들이 한복 처음 입으려고 하면 저고리부터 입고 치마 나중에 입으려고 하는 심정 내가 200% 이해했..

어쨌든, 그래서 입었다.







이 사진들 내가 봐도 좀 웃긴데, 뭘 하고 있어도 장군감인데다가 처음 입어보는 옷이라 어찌할 바를 몰라하는 게 훤히 보인다. 그런 게 여행의 재미이긴 하다만. 

그래서 이런 사진도 있다. 이름하여 까만배추벌레 김교주의 망중한. (P군의 요청으로 발이 나오는 사진으로 교체;;) 






흠흠, 바닥의 카펫은 전체가 한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만일 지금 당신이 내가 뭔가 말을 돌리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면, 맞다. 먼산)




이건 왼쪽 팔에 수놓아져 있던 무늬. 뭐냐고 묻지 않는 게 예의 물어봤고, 대답도 들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 걸로 미루어 별로 중요하지 않 머리가 나쁜가보다.















아아, 그리고 여기에서 정말 즐거워하고 있는 한 장의 사진이 찍혔다.


믿거나 말거나 앞모습. 히잡을 있는대로 내려 얼굴을 가리고 히잡 뒤에서는 미친듯이 웃고 있었다. 응헝응헝.


사실은 이런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모스크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한컷.

아부다비의 그랜드모스크는 아직도 외부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외부에서 보는 것보다 건물 내부가 훨씬 넓고, 사진들을 자세히 보면 샹들리에를 비롯한 내부 장식이 무척 화려한데 그게 조금도 과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조금 더 솔직하고 가감없는 표현을 곁들이자면 돈 처바른 티가 훅훅 나는 건물이다. 훗.(조용히 먼산을 본다.)

여행 기간 내내 아부다비의 날씨는 한국의 늦여름-초가을 정도의 온습도를 유지해주었다.  그래서 사진에서처럼 긴팔을 입고 있어도 전혀 덥지 않았다는 말씀. 바람이 굉장히 많은 곳이었는데, 덕분에 머리가 한시도 제 자리를 찾지 못했다;

그나저나 무슨 고민이 저리 많은 얼굴인지 모르겠군-_-






밤의 문화가 발달해 있는데도 이 도시의 밤거리에는 여성이 극히 드물다.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게다가 아부다비는 관광객이 많은 도시가 아니었다. 각각의 인종이 뒤섞인 인종박람회장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하면서도 동양 사람을, 그것도 여성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로 그 밤의 시간 동안 아부다비 밤거리에서 내가 본 동양 여자는 쇼윈도에 비치는 나 자신이 전부였다. (... 당신 지금 여기 동의 안 하는 거 다 알아. 시끄러워, 조용히 해. 염색체 XX 맞다고-_-) 

밤의 거리에서 사진 대신 밤공기를 즐기며 마냥 걷고, 또 걸었었다. 아부다비 복판의 주류매장에서 스미노프를 샀고, 그 누구도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만끽하면서 스스럼 없이 대화를 나눴다. 할인마트 어디쯤인가에 있는 인도 식당의 커리는 눈이 튀어나오게 맛있었을 뿐 아니라 싸기까지 해서 더 행복했다. 

세상의 모든 아침이 다 그런 것일까. 갈색 몸에 검은 꼬리를 가진 새가 아침을 지저귀는 가운데 숙소에서 맞던 아침, 붉은 색의 모래가 바람을 타고 바닥을 흐르는 곳.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어를 할 줄 알지만 그 곳에 있는 동안 채 열 마디의 영어도 할 필요가 없었고 현지어는 더더욱 할 일이 없었다. 


짜잔~
두바이 국립 박물관 앞 정원. 

이 동네 고양이들은 놀랍게도 사람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을 뿐더러 마치 개들처럼 사람이 부르면 사부작대고 다가와 몸을 비빈다. 들개들이 지독히 더럽고 냄새나는 몸을 가진 데 비해 이 곳 고양이들은 깨끗하고 영양상태도 훌륭한 편. 

사진 속의 고양이는 국립 박물관 주변을 맴돌며 풀을 뜯고 있다가(정말로 풀을 뜯고 있었다;;) 내 눈에 띄었는데 손을 내밀자 사뿐사뿐 걸어오시더니 자리에 앉아 사람의 손길을 즐기셨다. 자세히 보면 눈을 감고 계시다!

바닥의 까만색 줄은 송수관이다. UAE는 사막이므로.. 배경에 보이는 나무들, 풀들, 꽃들 키우려면 송수관은 필수. 

국립 박물관 내부 사진은 찍지 못했는데, 입장료는 3디람(대략 1천원)으로 싼 편이고 박물관이라기보다는 민속촌과 비슷한 구성이다. 아무래도 역사와 전통으로 밀어붙이는 국가는 아니다보니 박물관도 연혁이 짧고 소장 유물도 많지는 않은듯. 




파스타와 새우요리가 맛있었던 아부다비 골프클럽. 독수리 모양을 하고 있다. 에... 저 남자분은... 누구시더라-_-;? 아부다비도 계절로는 겨울이라 별로 덥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역시 햇살이 조금 강해서 눈을 제대로 못 뜨고 인상 찌푸린 사진. 하지만 독수리를 살리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한컷.



두바이 쇼핑몰 내부. 한 블럭이 통째로 쇼핑몰이기 때문에 주차장에서 본인이 차를 어디에 댔는지 잊으면 큰일이다. 3층에는 말레이시아 회사 소유의 서점이 있는데 리락쿠마가 저렇게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한국 캐릭터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ㅠㅠ
캐릭터 상품과 책값은 한국보다 비싼편(인데도 여기서 이거저거 쓸어담은 이유가 대체 뭐지;)
그리고 이 날 쇼핑에서 아이팟 터치 4세대와 뉴문-트와일라잇-이클립스 스페셜팩을 선물로 받았다. 아이팟 2세대는 이제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달까.

이날 저녁에는 두바이 아이비스 호텔에 짐을 풀었는데, 종일 계속된 관광과 쇼핑의 힘으로 늦잠을 자는 바람에 호텔 조식을 놓치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대신 호텔 측에서 늦잠자는 사람들을 위해 따로 준비한 크라상과 커피, 과일주스로 대충 허기를 채우고...



수상택시 타러 가는 길에서 만난 모스크.
모스크란 결국 우리 나라의 교회나 성당 같은 거라서 어딜 가나 쉽게 만날 수 있다. 무슬림들은 하루에 기본 5회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고, 정해진 시간이면 어김없이 어딘가에 있는 스피커를 통해 살라(기도문이라고 할까)가 흘러나온다.  대부분의 공공기관들, 큰 건물에는 기도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을 정도. (심지어 쇼핑몰에도 있다!)


나 지금 밥바. 바쁘다고!

바 이름이 너무 재미 있어서 한컷 찍어달랬더니 급한 마음에 본인 손가락까지 찍으신 P군. 나중에 한국 가서 누가 "교주 뭐해?" 하고 물으면 저 사진 보여주라나. 



부실했던 아침식사에 대한 보복으로 아쉬움을 보상받기 위해 스테이크 전문점에 가서 주문 넣고 기다리는 중. 여전히 머리는 산발이다. 음식을 기다리는 저 탐욕스러운 눈빛.



독특한 코카콜라 캔. 개당 2디람정도...(600원!) 후방에는 아랍어가 적혀있다. 할라피뇨를 곁들인 치즈소스 안심스테끼, 마늘소스를 얹은 녀석. 아... 정말이지 저 고기 두께를 보여줄 수 없는 게 억울할 지경. 육질과 두께, 맛, 가격까지 뿌듯했던 두바이몰 3층 식당가의 스테이크 하우스. 이름이 뭐더라... rib & steak였나; 
스테이크도 스테이크지만 저 매쉬 포테이토 정말 환상적으로 맛있었다!


자, 그리고 여행의 마지막날 밤 다시 아부다비로 돌아가 숙소에서 저녁을 만들어먹었다. 여행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한국 음식이 그립지는 않았는데 어쩐지 라면은 땡겨서 무려 해외에서의 푸라면. P군에게는 김치볶음밥을 하사했다. 



숙소 주방 냉장고에 부식이 200만원어치 들어 있었는데 해먹은 건 김치볶음밥. 하지만 P군이 원한 메뉴가 그거였으니까 뭐.... 저 볶음밥의 양이 상당했음에도 불구하고 P군은 쌀 한 톨 남기지 않고 전부 드셨다는 후문. 그리고 이날 밤, 이런 일이 있었드랬다.



경험자라면 아실듯. 이것은 바로 물담배. 민트향을 주문해서 피웠는데, 한국에선 숯 다 되면 끝이라며? 여기선 무한정 숯을 바꿔준다. 손님 중에 여자는 나뿐이었고, P군에 따르면 자신이 이 가게에 와본 이래 여자 손님이 있는 경우를 두 번밖에 못 본 건 그렇다 치고 아마 한국여자로는 카페 최초일거라는 전언.(근데 이거 좋은건가?) 물담배 마우스피스만 진짜 담배로 바꿔주면 아주 그럴싸하겠다고 말하던 P군의 표정은 조금 씁슬했는데, 기분탓인지도 하핫.
뒤에 보면 연두색 옷 입은 현지인이 있는데, 모로코 사람들은 전통의상을 입지 않는다고 한다. 로컬이지만 전통의상을 입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대부분 모로코인이라고. <- 시리아, 알제리, 이집트, 요르단, 예멘 등등이라고 P군이 고쳐주었습니다 ㅋㅋ




마지막 날 공항 카페테리아에서 맞이한 아침식사의 처참한 잔해. 이 동네 버터의 질은 정말 좋아서 버터 들어간 것들이 전부 맛있다. 당신은 지금 버터 크라상의 시체를 보고 있음. 그리고 이 곳 사람들은 커피를 한약처럼 내린 다음 설탕을 듬뿍 넣어 먹는다. 우측 중앙의 과일컵 속에는 수박, 멜론, 파인애플 등등이 들어 있었는데... 맛있었다. .. 맛있었다 말고 다른 표현을 하고 싶은데 그냥 맛있었어;ㅁ; 어쩌라고 ;ㅁ;

돌아오는 길은 바람의 방향이 비행기 꽁무니를 밀어주는 형국이라 8시간의 비행으로 마무리. 아부다비에서의 며칠간 랜드 크루저에 익숙해져 있는 김교주는 아버지의 세단에 타고 내리면서 창틀에 머리를 두번이나 들이받았다나.

여행기를 쓰기는 써야겠고 일은 하기 싫고 잠은 쏟아지는 덕분에 훌렁훌렁 써버렸지만, 어쨌든 내 사막에는 분명히 엄청나게 스케일 크고, 맑은 물 솟는 오아시스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돌아온 여행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게 이 여행 최고의 선물이었음을 굳이 말할 나위 없겠다.



덧 1: 기름값 정말 싼 나라다. 1리터에 500원꼴 하는 주유소에 가서 기름을 넣으며 P군은 이 정도면 이 나라에서는 무척 비싼 거라고 첨언. 

덧 2: 번호판이 앞자리면 왕족들이라는데, 나는 12번과 34번을 목격했다. 12번은 벤틀리, 34번은 아우디를 몰고 가더군. 

덧 3: 속도 120 내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고, 좋은 차 정말 많이 굴러다니는 동네. 심지어 버즈 칼리파 앞 길거리에는 마제라티-람보르기니-페라리가 아무렇게나 세워져 있었다. 무서운 놈들;

덧 4. 버터를 비롯한 모든 유제품의 품질이 좋았다고 수정해야겠다. 요거트, 버터, 치즈의 종류가 무궁무진해서 유제품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천국일듯. 하지만, 술은 허가받아야 살 수 있다-_-)/ ... 유제품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술은...;?

덧 5. 이게 가장 중요한 부분. 한국사람들은 남자를 키도 커, 키는 커, 키만 작아, 키도 작아... 로 나누는데 그 동네 남자들은 일단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로컬인 경우에) 키는 기본적으로 크다. 그래서 이런 분류를 하게된다. 늘씬하고 잘생겼거나, 뚱뚱하고 잘생겼거나. 늘씬하고 덜 생겼거나, 뚱뚱하고 덜 생겼거나. 다만 잘생겼다에 속하는 남성이 80%에 육박한다. ... 정말 아부다비 두바이 로컬들 너무 잘 생겼어 ㅠㅠ 두바이에서 종종 보이는 금발 벽안들따위 눈에 들어오지도 않게 만드는 매력이 철철 넘... 심지어 난 동네 몰에서 지나가는 로컬 소년에게 넋을 빼앗기고 있다가 P군에게 "쟤 기껏해야 열일곱밖에 안 먹었을거예요!" 라는 비난 아닌 비난을 들으며 끌려 나와야했다. ... 여자들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다 -_-)/ 



이걸로 스크롤의 압박 넘쳐나는 여행기는 끝. 나중에 보태거나 빼고 싶어지면 손보겠지만 일단은 여기까지. 여행하는 내내 충실한 동반자이자 가이드였으며 운전기사였던 나의 P군에게 무한한 감사를 전하며 마칩니다. 웅헤헤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