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발이 저리고 온몸의 혈관이 아프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벅벅 소리가 나도록 여기저기를 긁어대야 한다. 부은 얼굴을 동반한 속쓰림은 기본. 술을 조금 많이 마신 다음 날의 내 상태, 정확히는 지금의 내 꼴이다. 저린 손을 잠시 주물주물해서 피의 순환을 돕는다. 지금 내게 절실히 필요한 건 해장국 한 그릇.
(여기까지 써 놓고 가서 라면 한 사발 하고 온 김교주. )
나는 사무실에서 그는 집에서 출발해서 종로 3가의 5호선 열차 안에서 조우한 시각이 대략 오후 1시 40분. 우리에게 사실 별다른 계획이 있는 건 아니었다. 서점에 들렀다가 삼청동에 가서 수제비를 먹고 나머지는 나중에 생각하자는 말을 미리 해두었을 뿐.
돌이켜 보면 어제 그는 분명히 조금 이상했는데, 그걸 내가 대단치 않게 넘겨버린 건 그 전날의 투닥임이 앙금처럼 남아 있어서라고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주절주절 길게 말할 필요가 전혀 없겠다. 소설을 쓰려는 것도 아니고 일기를 쓰려는 것도 아니니까.
그의 학교 음악실 문을 열었을 때 거기에 그의 후배 수십명이 둘러 앉아 있을 줄 미리 알았더라면(안면이 있던 K군이 큰 결심 하셨습니다 라고 말한 건 괜한 소리가 아니었다), 거기서부터 시작된 술자리가 새벽 2시까지 이어질 줄 미리 알았더라면(모친은 딱 한 번 어디냐는 문자를 보내셨고 내 위치를 파악하신 다음에는 그에게 모든 걸 일임하셨다. 이 무한신뢰는 대체 뭐냐고!), 내가 소주 한 병 반을 야금야금 마시게 될 줄 미리 알았더라면 난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었을까(꺅, 술병날 것 같아)?
지인들 사이에 끼어 있는 그는 분명 나와 단둘이 있을 때하고는 전혀 다른 의미로 즐겁고, 밝아 보였다. 그 행복함의 순간을 함께 나눌 수 있고 그의 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고맙고 나 또한 행복한 일인가. 비록 머리는 좀 아프고 몸은 노곤노곤하지만. 술자리의 막판에는 술집 구석 의자에 등을 기대고 정엽에 심취해서 꾸벅꾸벅 졸기는 했지만.
낯선 사람들 틈에 끼어 있는 걸 크게 불편히 여기지 않는 성격을 물려주신 부모님께 감사해야겠다. 기꺼이 부평에서 집까지 기사노릇하며 데려다 준 K군에게도(불사조군까지 집에 던져줬으니 두배 감사), 형수님 드립으로 우리를 즐겁게 해준 C군에게도. 그리고, 본인의 밴드 생활 10년 만에 처음으로 여자를 데려간 남자가 된(이 점을 너무 많은 사람이 인증해 줘서 오히려 좀 슬펐다-_-), 자랑스럽게 모두 앞에서 내 어깨를 감싸 안으며 "제 여자친구에요!"를 외친 불사조군에게는 와락 덥석 포옹 한번.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고
이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다가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