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이 남아 있어야 시도만이라도 가능한 게 항암 치료라는 걸 내가 알게 됐을 즈음에는, 이미 서열 1위 오빠의 체력이 바닥을 치고 있었다. 다음 주에 있을 사진전 준비를 하고, 친구를 만나러 가는 아들-그러니까 내게는 조카-에게 용돈을 쥐어주며 주의사항을 일러주는 일련의 일상생활을 하는 그의 얼굴에는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백혈구 수치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장출혈로 피범벅이 된 그가 입원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이게 그의 마지막 입원이 될 수도 있다고. 어쩌면 그가 퇴원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고.
내 무섭고 흉한 예상을 깨고 그는 퇴원수속을 밟고 집으로 돌아왔다. 누구의 손길도 거부하면서 바닥에 가만히 누워 아픈 데를 어루만지는 그의 곁에서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책을 읽었다. 책장을 넘기며 조용조용, 이모들의 험담을 늘어놓는 나를 몇 번 쳐다보면서 오빠가 희미하게 웃은 것 같기도 했다.
오빠를 찾아온 문병객들, 내 모친을 위시한 이모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날 때 나도 함께 일어섰다. 가방을 챙기는 내게 그가 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손목을 내밀며 작게 말했다.
"이쪽으로 와서, 나 좀 일으켜봐."
가볍게,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그의 몸이 일으켜 세워져서 새삼 슬퍼졌다. 그 가느다란 손목으로 그가 내 손을 꼭 잡고는 자기 방으로 나를 데려가 세워두고는 무언가를 한참이나 뒤적이며 찾기 시작했다. 나오려는 눈물을 꾹꾹 누르며, 나는 괜히 그가 기르는 요크셔테리어를 괴롭혔다.
한동안의 기다림 끝에 마침내 그가 내게 내민 것은 보이차 반 상자와 파커 볼펜 세트.
우물우물, 고마워요 오빠 잘 쓸게요 소리를 입에서만 중얼거리고서 도망치듯 그의 방을 빠져나와 엘레베이터 앞에서 한참을 울었다.
이 눈물과, 이 두려움들이 다 헛된 것이 되기를 빈다.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