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6. 9. 11:31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새로 이사한 사무실 건물 블럭 끝에 커다란 광고판이 하나 붙어 있다. 그리고 거기에 저 말이 써 있다.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이상이 금홍에게 주었다는 저 시의 전문은 사실 무척이나 슬프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평생 그대를 잊을 수가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줄은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다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이상, <이런 시>, 전문.

 

슬픈 시, 그 마지막 행이 너무 마음에 와 닿아서 남자 친구에게 보내주고서는 한동안 잊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데이트를 마치고 내가 버스에 오르기 직전 그가 내 손을 잡고서는 손등에 입맞추며 말했다.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화끈 달아오른 볼로 버스를 탔다. 창밖에서 웃고 있는 그에게 손을 흔들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삼십 대 중반의 연인은 그 날 그렇게 주접을 떨었다.

 

 

 

 

며칠이 지나고 지난 토요일, 침대에서 뒹굴대며 라디오를 들었다. 그리고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불쑥 저 이야기를 사연으로 보냈다. 잠시 후, 낭랑한 목소리로 아나운서 DJ가 이야기했다.

 

"음, 이번에는.... 하하, 청춘들 사연 소개해 드릴게요."

 

그러고서 그녀는 내가 보낸 문자를 그대로 읽어주고, 격조 높은 커플이라며 깔깔대고 한 차례 웃었다. 남자 친구과 함께 드시라고 커피 보내 드릴게요, 하고 말할 때 난 이미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소리 높여 자랑질을 하고 있었지. 삼십 대 중반의 두 사람은, 자기들의 주접을 전국 방송에 내보내놓고 좋다고 낄낄댔다.

 

 

이렇게 또 하나 추억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