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29일 오전 6시 20분. 신도림을 향해 꾸역꾸역 달리는 용산 급행 전철 안에서 "내가 정한 기준에서 공식 집계 가능한" 올해의 백 권째 책을 완독했다. 내가 읽은 백 번째 책은, 돌베개의 답사여행의 길잡이 시리즈 1권, 전북 편이었다.
나는 도서출판 돌베개를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2006년, 대학 3학년의 어느 전공 수업 자료를 구하기 위해 도서관을 이잡듯이 뒤지다가 찾아낸 <고전 소설 속 역사 여행>이 나와 돌베개의 첫 만남이었고 그 날 이후 연달아 <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와 <나의 아버지 박지원>을 만나면서 이 출판사의 책이라면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었다. 하지만, 올해의 백번째 책이 돌베개의 책이 된 것은 단순히 그런 이유에서만은 아니었다.
올해의 89번째 책을 다 읽어갈 무렵, 내가 가장 마음을 두고 사랑했던 내 사촌오빠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긴 투병 생활 동안 나는 그를 찾아갈 때마다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는 대신 그 옆에 배를 깔고 누워서, 때로는 쪼그리고 앉아서 책을 읽었다. 그리고 그가 떠난 후 96번째 책을 읽으며 올해 마지막 책을 생각하던 즈음 그의 빈 방엘 들어서게 됐었고, 주인 잃은 서가에서 돌베개의 답사여행 길잡이 시리즈 가운데 몇 권을 발견했다.
- 89번
-96번
오빠는 여행을 지독히 좋아했다. 봄가을이면 이모들 네 사람을 모두 끌고 돌아다니며 자기 표현으로 양로원 원장 노릇을 했고, 제자들, 후배들, 친구들을 여기저기로 데리고 다니면서 추억을 쌓던 사람이었다. 나는 사촌 동생들 가운데 오빠의 그 여행 덕을 가장 크게 본 녀석이었다.
그런 오빠였다. 그가 이 책들을 사서 서가에 꽂아두고, 각 지방에서의 여행 경로를 계산하며 즐거워했을 모습이 머리를 가득 채우는 순간 2011년의 내 마지막 책은 당연히 이게 되어야 했다. 책들을 꺼내 끌어 안고, 거실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계신 이모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입을 틀어 막고 한참을 끅끅대고 울었다.
그렇게, 박완서로 시작된 올해의 독서는 한국문화유산답사회가 엮은 답사 길잡이로 마무리되었다. 가능할지 어떨지, 목표를 세울 때만 해도 나조차 알 수 없었던 100권의 책이었다. 심지어, 올해는 백권쯤 읽어야겠다는 희미한 목표를 세운 것은 연초도 아니고 2월 중순 무렵에서였다. 2월 초순의 두바이-아부다비 여행에서 돌아오면서 그 결심을 굳혔던 기억이 난다. 그런 결심이 선 것은, 그리고 그 결심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한 것은 고백하자면, 외로움 때문이었다.
P군을 두고 돌아서던, 그리고 P군이 나를 떠나보내며 돌아서던 아부다비 국제 공항 터미널에서도 나는 책을 읽고 있었다.
- 아부다비에 가져갔던 박완서 선생의 책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뼈에 스미는 외로움으로 치를 떨었다. 이제 다시 이별이다. 다시 혼자 남겨진다. 곧 다시 보게 되겠지만 한동안은 혼자서 이 생활을 해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돌파구를 찾게 만들었다. 그래서 읽기 시작했던 거다. 책을. 끝없이.
한 해에 200권의 책을 읽어치웠던 때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 때의 독서는 외로워서라기보다는 오기에서였다. 학부 시절, 제대로 된 과제를 제출하기 위해서, 토론에서 명확한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서, 나는 도서관을 전부 사기라도 할 기세로 책을 읽어댔었다. 그 때의 독서는 분명히 오기와 승부욕에서 비롯된 전쟁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P군은, 미친 듯이 책을 읽어대는 나에게 책을 선물하면서도 걱정스러워했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모친께서 제발 책 좀 그만 읽고(그만 사들이고) 다른 데에 눈을 돌려보라고 조언하시고, 지인들에게 대단하다는(지독하다는) 말을 듣고, 심지어 새로 산 책을 끌어안고 히죽이다가 괴기스럽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책읽기를 멈출 수 없었던 것은 독서야말로 올해 내게 최고의 친구이자 최선의 탈출구였기 때문이다.
함께 있고 싶은 사람 곁에 있을 수 없는 공허, 외로움, 그런 것들을 나는 책으로 채웠고 그 선택은 백권의 책을 모두 읽은 지금 돌이켜 생각해도 최고이자, 최선이었다.
-이른바 P군 컬렉션
모르긴 몰라도, 아마 내년에도 책을 읽어대고 있을 것이다. 건강관리뿐 아니라, 책 이외의 다른 데에도 취미를 붙여보겠다며 시작한 운동 중에도 트레드밀 위에서 책을 읽다가 떨어지던 나니까. 다만 내년에는 조금 여유를 갖고 독서할 수 있겠지.
사족 1: 공식 집계 가능한 내가 정한 기준이란, 올해 처음 읽은 책들을 말한다.
이미 읽었던 책을 다시 읽은 경우 100권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처음 읽었다고 해도 만화책, 월간지는 제외.
사족 2: P군 컬렉션 가운데 일부는 아직 완독하지 못했음.
사족 3: 중반 이후부터는 사진을 찍어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에 동시에 남김.
사진 가운데 내 이니셜인 H 책갈피가 얹혀 있는 것은.. 단순히 책갈피로 그걸 쓴 책의 경우임;
이전 기록은 수기로 노트에 작성. 나는 아날로직한 인간.
사족 4: 올해 내 최고의 책은 역시 돌베개의 <분노하라>, 최악의 책은..... 노코멘트.
사족 5: 솔직히 말해서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100권이 많아서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사실 많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목표를 달성했다는 점에서.
올 한 해 나의 독서에 (의도하시지 않으셨겠지만) 지대한 도움을 주신 도서출판 돌베개 마케팅 담당 조원형 님, 패밀리 세일로 막판 책 지름에 불을 붙여준 민음사, 좋은 책을 50% 이상 할인된 가격으로 (현재도!) 판매 중인 역곡역사 내 서점, 항상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책 사진에 좋아요-_-* 눌러주시는 서배우님, @amourpropre님, 뚜군, 곤, 그리고 누구보다도 이 독서량에 영향을 미치고 또 그만큼 책을 공급해준 P군에게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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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서출판 돌베개를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2006년, 대학 3학년의 어느 전공 수업 자료를 구하기 위해 도서관을 이잡듯이 뒤지다가 찾아낸 <고전 소설 속 역사 여행>이 나와 돌베개의 첫 만남이었고 그 날 이후 연달아 <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와 <나의 아버지 박지원>을 만나면서 이 출판사의 책이라면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었다. 하지만, 올해의 백번째 책이 돌베개의 책이 된 것은 단순히 그런 이유에서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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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89번째 책을 다 읽어갈 무렵, 내가 가장 마음을 두고 사랑했던 내 사촌오빠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긴 투병 생활 동안 나는 그를 찾아갈 때마다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는 대신 그 옆에 배를 깔고 누워서, 때로는 쪼그리고 앉아서 책을 읽었다. 그리고 그가 떠난 후 96번째 책을 읽으며 올해 마지막 책을 생각하던 즈음 그의 빈 방엘 들어서게 됐었고, 주인 잃은 서가에서 돌베개의 답사여행 길잡이 시리즈 가운데 몇 권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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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는 여행을 지독히 좋아했다. 봄가을이면 이모들 네 사람을 모두 끌고 돌아다니며 자기 표현으로 양로원 원장 노릇을 했고, 제자들, 후배들, 친구들을 여기저기로 데리고 다니면서 추억을 쌓던 사람이었다. 나는 사촌 동생들 가운데 오빠의 그 여행 덕을 가장 크게 본 녀석이었다.
그런 오빠였다. 그가 이 책들을 사서 서가에 꽂아두고, 각 지방에서의 여행 경로를 계산하며 즐거워했을 모습이 머리를 가득 채우는 순간 2011년의 내 마지막 책은 당연히 이게 되어야 했다. 책들을 꺼내 끌어 안고, 거실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계신 이모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입을 틀어 막고 한참을 끅끅대고 울었다.
그렇게, 박완서로 시작된 올해의 독서는 한국문화유산답사회가 엮은 답사 길잡이로 마무리되었다. 가능할지 어떨지, 목표를 세울 때만 해도 나조차 알 수 없었던 100권의 책이었다. 심지어, 올해는 백권쯤 읽어야겠다는 희미한 목표를 세운 것은 연초도 아니고 2월 중순 무렵에서였다. 2월 초순의 두바이-아부다비 여행에서 돌아오면서 그 결심을 굳혔던 기억이 난다. 그런 결심이 선 것은, 그리고 그 결심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한 것은 고백하자면, 외로움 때문이었다.
P군을 두고 돌아서던, 그리고 P군이 나를 떠나보내며 돌아서던 아부다비 국제 공항 터미널에서도 나는 책을 읽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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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뼈에 스미는 외로움으로 치를 떨었다. 이제 다시 이별이다. 다시 혼자 남겨진다. 곧 다시 보게 되겠지만 한동안은 혼자서 이 생활을 해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돌파구를 찾게 만들었다. 그래서 읽기 시작했던 거다. 책을. 끝없이.
한 해에 200권의 책을 읽어치웠던 때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 때의 독서는 외로워서라기보다는 오기에서였다. 학부 시절, 제대로 된 과제를 제출하기 위해서, 토론에서 명확한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서, 나는 도서관을 전부 사기라도 할 기세로 책을 읽어댔었다. 그 때의 독서는 분명히 오기와 승부욕에서 비롯된 전쟁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P군은, 미친 듯이 책을 읽어대는 나에게 책을 선물하면서도 걱정스러워했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모친께서 제발 책 좀 그만 읽고(그만 사들이고) 다른 데에 눈을 돌려보라고 조언하시고, 지인들에게 대단하다는(지독하다는) 말을 듣고, 심지어 새로 산 책을 끌어안고 히죽이다가 괴기스럽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책읽기를 멈출 수 없었던 것은 독서야말로 올해 내게 최고의 친구이자 최선의 탈출구였기 때문이다.
함께 있고 싶은 사람 곁에 있을 수 없는 공허, 외로움, 그런 것들을 나는 책으로 채웠고 그 선택은 백권의 책을 모두 읽은 지금 돌이켜 생각해도 최고이자,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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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긴 몰라도, 아마 내년에도 책을 읽어대고 있을 것이다. 건강관리뿐 아니라, 책 이외의 다른 데에도 취미를 붙여보겠다며 시작한 운동 중에도 트레드밀 위에서 책을 읽다가 떨어지던 나니까. 다만 내년에는 조금 여유를 갖고 독서할 수 있겠지.
사족 1: 공식 집계 가능한 내가 정한 기준이란, 올해 처음 읽은 책들을 말한다.
이미 읽었던 책을 다시 읽은 경우 100권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처음 읽었다고 해도 만화책, 월간지는 제외.
사족 2: P군 컬렉션 가운데 일부는 아직 완독하지 못했음.
사족 3: 중반 이후부터는 사진을 찍어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에 동시에 남김.
사진 가운데 내 이니셜인 H 책갈피가 얹혀 있는 것은.. 단순히 책갈피로 그걸 쓴 책의 경우임;
이전 기록은 수기로 노트에 작성. 나는 아날로직한 인간.
사족 4: 올해 내 최고의 책은 역시 돌베개의 <분노하라>, 최악의 책은..... 노코멘트.
사족 5: 솔직히 말해서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100권이 많아서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사실 많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목표를 달성했다는 점에서.
올 한 해 나의 독서에 (의도하시지 않으셨겠지만) 지대한 도움을 주신 도서출판 돌베개 마케팅 담당 조원형 님, 패밀리 세일로 막판 책 지름에 불을 붙여준 민음사, 좋은 책을 50% 이상 할인된 가격으로 (현재도!) 판매 중인 역곡역사 내 서점, 항상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책 사진에 좋아요-_-* 눌러주시는 서배우님, @amourpropre님, 뚜군, 곤, 그리고 누구보다도 이 독서량에 영향을 미치고 또 그만큼 책을 공급해준 P군에게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