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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5 - 발

hanaholic 2011. 5. 7. 09:27
여름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그 무렵 늘 그랬듯이 그는 구로 디지털 단지 역 부근에 차를 대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 이유로 녹초가 된채 그의 옆에 무너지듯 주저앉고 나니 피곤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다리를 끌어당겨 운동화를 벗기고, 반 강제로 양말마저 벗기고 나서는 자기 다리 위에 내 다리를 올려놓은 자세로 물티슈를 꺼내 발을 닦아주기 시작했다. 한여름에 집에서도 양말을 챙겨신을만큼 맨발을 드러내는데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아마 그때 (말도 안되는)앙탈을 부렸던 것 같다.
"하지 마! 냄새 나!"
"가만히 있어. 냄새는 무슨."

버둥대는 다리를 꾹 누르고 꼼꼼히 발을 닦다가 발가락에 이르러,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발가락 참 가지런하네. 도시락 같다. 계란말이."
"계..계란말이...?"
물기가 남아있는 내 발을 쥐고 자분자분 주무르며 그는 다시 말했었다.
"응, 이쁘네. 당신 발."

그저께, 요즘 최악의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그가 그 바쁜 시간을 쪼개 내 생일 선물로 운동화를 샀다는 말을 전해왔다. 어제 밤 통화를 마칠 무렵...
"당신 운동화를 손위에 올려놓고보니까, 그 때 생각이 났어. 당신을 발을 닦아주고 내 손에 쥐었던 때 말야."
그리고 나는 그에게 되물었다.
"이런 남자가 다시 만나질까? 내 발까지 사랑해주는 남자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