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솔직히 가끔 니가 궁금해.
hanaholic
2011. 3. 29. 10:22
얼마 전 친구 커플이 헤어지더니(남자쪽은 6년지기, 여자쪽은 남자를 통해 알게 된 4년지기) 여자 아이가 "물론 다른 남자와" 미칠 듯한 스피드로 결혼 날짜를 잡고 결혼에까지 골인했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기도 할 뿐더러 한동안 꽤 삐걱거리던 커플이라 내 입장에서는 별로 놀라울 것도 없었다만. 여자 아이 입장에서는 나를 보기가 껄끄러웠는지 어쨌는지 몰라도 결혼한다는 말만 해주고 청첩장을 어쩌겠다는 말이 없길래 나도 그냥 축하한다 입으로만 인사치레를 했는데, 문제는 사내 녀석 쪽이었다.
녀석은 내 주변에 보기 드문 문과 출신이고, 책 읽는 취향이나 글 쓰는 스타일이 나와 비슷해서 블로그에 적어놓는 글을 구경(!)하러 가곤 했는데, 엊그제 이 자식의 블로그에 들어가보니 결혼한 그녀에게 저주에 가까운 분노를 터뜨리고 있었다.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한테 안겨서 잠이 오냐."
정도는 양반이고, '내가 너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냐' 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나만큼 너를 사랑해줄 남자가 있을 것 같냐'라는 찌질한 발언에다가, 무엇보다도 백미는 '확 이혼이나 해버려라'에 있었으니, 오호 통재라.
다행히 그다지 인기 있는 블로그가 아니라 방문객이 1임을 확인한 나는 녀석에게 전화를 걸어 개지랄을 해주었다. 아니, 해주려고 했다.
녀석은... 술에 절어서 웃고 있었다. 우는 게 아니라 웃고 있었다. 차라리 울고 있었다면 내 마음이 조금 나았을까. 녀석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술김에 싸지른 글이라면서, 어차피 내가 아니면 볼 사람도 없다면서 녀석은 웃고 또 웃었다. 사실은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고, 너무 보고 싶다고, 이런 걸 다 떠나서 솔직히 가끔 무척 궁금하다고. 잘 지내는지, 행복한지.
"잘 지내고 있을거야. 아닐리가 없잖아. 그러게 있을 때 잘 하랬지 병신아."
"난 잘 한다고 했지."
"의도가 항상 결과랑 부합하는 건 아냐."
위로도 지랄도(!) 하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술 깨고 맨정신 돌아오면 굉장히 쪽팔릴 거라고 빈정대긴 했지만 아주 진심은 아니었고, 잠시 후 확인해보니 녀석은 그 글을 지우고 미안하다는 글을 새로 남겨둔 채였다.
K는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알게 된다 하더라도, 뭐 어떤가. 어차피 K를 아는 사람은 나를 모르고, 나를 아는 사람은 K를 모를텐데. 적어도 이 공간에서는.(하루에 두 명 들어오는 블로그에 뭐;;;)
하지만 나는 K의 이 이야기를 꼭 남겨두고 싶었다. 그래야 나중에, K가 그녀를 잊었다 싶을 때쯤 K를 놀릴 수 있으니까. ...... 응?!
무언가 급격히 좋은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