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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hanaholic
2011. 2. 17. 22:17
확신을 못 주는 남자만큼 끔찍한 게 또 있는 줄 알아?
미친 년아, 세상에 확신 줄 수 있는 남자가 어딨어. 게다가 너같은 년을!
그건 니 말이 맞긴 하다.
... 또라이 같은 년. 넘어지고 맞고 깨져도, 앞만 보고 가 이년아. 잘했어. 잘 하고 있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지금 확신을 하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늘 얼마쯤 불안하고 얼마간 두렵고. 걱정되고 신경 쓰이고. 그래야 오히려 인간답지 않을까. 다만 언제나 공허하고 막연했던 게 이제는 완연히 현실이 되어서 눈 앞에 있는 것뿐. 손에 잡힐 만큼 가까이 와 있을 뿐.친구는 나를 잡아먹을 기세로 떽떽대놓고서는 결국엔 웃었다. 이 달달한 년, 이라고 욕 한 마디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고.
늘, 아주 사소한 일이 문제가 되는 것 같아요. 조금 서운하고, 조금 곤란한 것들이 모여서 나중에 크게 문제로 불거지게 돼요. 잘 이겨나갔으면 좋겠어요.
나한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잖아요.
당연하죠, 우리 얘긴데요.
.......
듣고 있어요? 우리 이야기라구요.
응, 듣고 있어요.
말하고 싶을 때 들어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괜찮아요.
하나도 안 괜찮으면서.
...
괜찮을리 없잖아.
괜찮아요.
괜찮지 않은 목소리야. 하나짱. 그냥 다 말해줘요. 다 말해주세요. 내가 당신한테, 하지 말라고 하는 이야기는 아무 것도 없어요. 그게 뭐가 됐든 말해줘요. 우리 이야기니까. 당신 이야기, 내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이야기니까요. 잊지 말아요, 응? 그걸 잊어버리면 안돼요.
돌아올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그도, 그런 그를 기다리는 나도 조금씩 조바심을 내기 시작했다. 그가 돌려놓은 몇 가지의 시뮬레이션을 다시 살피면서 두 사람 모두 확실히 비장해졌다. ... 비장해졌다.
걸어온 날보다 걸어야 할 날이 훨씬 더 힘들고 고통스러울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비장해진다. 그래놓고서는 다시 어린애가 되어 키득대고 웃는다. 어차피 겪어야 할 일인데 미리부터 겁먹지 말자고 서로 손을 잡아준다. 당장 우리 눈 앞에 쌓여 있는 일들 앞에서 다른 문제들이 소소해졌다. 그도 나도, 이렇게 서로에게 스며들어 집중하는 법을 배운다.
이 길 끝에서 날 기다리는 게 뭔지 모르겠지만(어쩌면 그야말로 고통뿐인 밀밭일지도) 그래, 우리 이야기가 될테니까. 그건 날 기다리는 미래가 아니라 우리를 기다리는 미래일테니까. 허공으로 흩어질 마음 같은 건 사치라고.